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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세계유산 등재에 자뻑하는 한국 외교부의 등신외교

자발적한량 2015.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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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일 본=이은희 재독 '풍경' 발행인·민중의 소리


지구 반대쪽인 독일 본. 현지 기준으로 5일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자리에서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규슈-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에 대한 심사결과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일본은 규슈와 야마구치 지역 8개현 11개시에 분포되어 있는 총23개의 근대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바 있습니다.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규슈-야마구치와 관련지역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까지



일본 세계문화유산 외교부 윤병세 박근혜 아베 유네스코 하시마 군함도 나가사키 미츠비시 조선소 조선인 강제징용자

일본이 신청한 근대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일본이 이 시설들을 '근대화 산업 유산군'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록한 것은 2009년 1월 5일입니다. 그리고 2012년 7월 3일 등재 준비를 위한 전문가 회의를 설치하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죠. 그리고 2013년 9월, 이를 세계유산으로 추천하기로 정부 차원의 공식결정이 내려집니다. 하지만 이웃나라인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외교 경로를 통해 이에 대한 항의를 하는 등 반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반발한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죠. 근대산업시설 23곳 중 하시마(군함도) 탄광, 나가사키 미츠비시 조선소(제3드라이독·대형크레인·목형장), 타카시마 탄광, 이미케의 미이케 탄광·미이케 항, 야하타의 신일본제철 등 총 7곳이 태평양전쟁 말기 무렵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린 한이 맺힌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14년 1월 1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규슈-야마구치와 관련 지역'라는 명칭으로 등재 신청서를 공식 제출합니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서 등재 권고 판정을 내리죠.


출처: 연합뉴스

일본 세계문화유산 외교부 윤병세 박근혜 아베 유네스코 하시마 군함도 나가사키 미츠비시 조선소 조선인 강제징용자

이코모스의 등재 권고 판정이 내려진 2015년, 한국과 일본의 본격적인 외교전이 시작됩니다. 한국 외교부에서는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명시할 것을 주장했고, 일본 측에서는 '당연히'(개 버릇 남주지 않기에) 이를 꺼립니다.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상대로 박근혜 대통령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서한을 발송한 것을 비롯하여 윤 장관이 의장국인 독일을 방문, 독일 외교장관과 회담을 하며 지지 요청을 했고, 결국 6월 2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의 도쿄 회담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반영하기 위한 추진 방안에 큰 틀에서 합의를 하게 됩니다.


그 뒤로 세부사항 조율을 위한 비공식 협의를 거쳐 6월 28일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가 21개 위원국이 참가한 가운데 독일 본에서 공식 개막합니다. 일본 정부는 양 국의 외교장관이 회담을 통해 합의한만큼 등재는 기절사실이라고 안도를 하고 있었죠. 하지만 7월 4일로 예정되어 있던 심사가 5일로 연기되고 맙니다. 조선인 노동의 성격을 두고 양측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었는데요. 일본 기타큐슈 시에서는 이 소식을 제대로 전달받지 않아 대형 스크린으로 유네스코 심의장면을 중계하는 행사를 그대로 추진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좀 더 자세히 심사 연기 사유를 알아보자면, 외교장관 회담에서 큰 틀에서 합의만 했을 뿐 디테일한 부분들을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면 강제징용 사실을 명기해야 된다고 쭉 주장해왔고,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일했다는 점을 명시하겠다고 밝히고 '나머지 쟁점은 협의로 풀자'고 의견을 모았는데요. 그 이후 일본에서는 등재 결정문에 '강제노동'과 관련된 문구를 명기하는 것에 한결같이 반대해왔고, 등재 결정 뒤 한국 대표단에서 밝힐 의견진술문에 대해서도 사전조율을 요구하는 시건방진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세계문화유산 외교부 윤병세 박근혜 아베 유네스코 하시마 군함도 나가사키 미츠비시 조선소 조선인 강제징용자

한국이 막판에 반대의사를 보이자 다른 위원국들 역시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해온 관행이 있어 회원국 중 강력한 반대 의사가 나오면 심사가 상당히 복잡해지기 떄문이죠. 물론 만장일치가 안되더라도 21개국 중 2/3의 찬성이 있으면 등재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재심사는 2년 후에나 가능해지는데, 내년부터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위원국에서 제외되기 때문에(한국은 회원국 유지) 절대적으로 불리해지는 상황이 되버리게 됩니다. 게다가 4일 한국의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무리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터라 일본은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 됐죠. 일본 내에서는 '대규모 반한 시위를 열자' '도쿄올림픽 유치를 방해한 것도 한국이다' '역시 북한과 같은 민족이었다'는 식으로 혐한 분위기가 고조됐습니다.


한편 이 와중에 미국 연방하원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연명서한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번 세계유산 등재 신청에는 2차대전 당시 연합국 전쟁포로의 역사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일본군이 전쟁포로를 노예 노동자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미쓰이, 미쓰비시, 아소그룹 등 당시 전쟁포로들을 노예 노동자로 사용한 일본 산업체들의 이름을 나열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던 중 5일,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에 대한 등재 심사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됐습니다. 한·일 양국이 조선인 강제노역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는 조건으로 합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일본은 15건의 문화유산과 4건의 자연유산, 총 19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구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문화전쟁은 해녀와 초기 교회 등의 유산을 양국이 각각 등재신청을 했기 때문에 1차전이 끝난 것일 뿐이라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윤병세 장관님, 정말 자랑스러우세요?


출처: SBS뉴스

일본 세계문화유산 외교부 윤병세 박근혜 아베 유네스코 하시마 군함도 나가사키 미츠비시 조선소 조선인 강제징용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5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일본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거둔 성과'라고 자평했습니다. 윤병세 장관의 기자회견 내용 간단히 살펴보시죠.

일본 근대산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가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히 반영되는 형태로 결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번 세계유산 등재 문제를 처리하는 과저에서 우리는 두가지 중요한 성과를 동시에 거두었다.

첫째는 ‘역사적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원칙과 입장을 관철시켰으며, 둘째는 그 과정에 있어서도 한일 양국 간에 극한 대립을 피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자평이 자화자찬이라는 비난이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데요. 한·일 양국간 협상이 '앙꼬 없는 찐빵'으로 한국의 구색만 맞춰준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핵심 쟁점이었던 조선인 강제노역 반영. 이 내용은 결정문에 본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 대표단의 발언록과 각주에 언급되었을 뿐이죠. 당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대신이 기자들에게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대사의 '징용'관련 영어 표현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걸 두고 과연 '성과'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건가요?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한 동원으로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했으며 2차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전략에 포함할 것...(후략)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상대로 한 일본 대표단 발언 中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의 발표를 주목한다.


등재 결정문 각주 中


음악프로에 비교하자면, 전파를 타게 될 본 방송 무대에는 못 서고 본 방송 전에 관객들 상대로 분위기나 좀 띄울 겸 시간 좀 떼울 겸 잠시 무대에 올라가 노래 한 곡 하고 내려오는 수준이네요. 

일본대표단이 언급한 정보센터 설립...글쎄요. 어느 정도 수위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더 나아가서는 실제 이행 여부까지 그냥 일본이 어련히 알아서할까 식인데요. 국제법적 효력을 갖게 되는 공식 문서 한장 받지 못한채 일본 특유의 립서비스에 당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네요.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독일이 취한 조치와 대조적으로 되면 일본의 양심에 반한다고 할 수 있고, 국가적 위신도 있기 때문에 이행할 것"이라고 답했다죠? 일본이 양심이 있다면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의 한이 서린 이 시설들에 대한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저 뿐인가요?



우리는 벌써 선조들의 고통을 잊은 민족인가


미군에 의해 구출된 조선인 강제징용자들

일본 세계문화유산 외교부 윤병세 박근혜 아베 유네스코 하시마 군함도 나가사키 미츠비시 조선소 조선인 강제징용자

1974년까지만 해도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있었고, 학교, 상점, 병원, 극장, 이발소 등을 갖춘, 인구 밀도가 도쿄의 9배에 달했던 일본 근대화의 상징 하지마 섬(군함도). 이러한 빛나는 발전 뒤에는 800여 명에 달하는 조선인 강제징용자가 있었습니다. 1평도 안되는 면적에 7, 8명씩 강제 수용됐고, 2교대로 12시간씩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들 중에선 도저히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하거나 탈출 중 익사한 사람들도 있었죠. 총 122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태평양전쟁 말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대상기간을 1850-1910년으로 한정한 채 과오를 반성하는 의미가 아닌 '일본 산업화의 상징'만을 부각해 세계문화유산에 이를 등재한 일본.



한 네티즌의 일침을 마지막으로 오늘 포스팅 마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고, 지금 일본의 짓거리는 '아시아를 발전시킨 근대화유산'으로 포장해 등재하는 것이란 점에서 각주에 강제노역을 주석으로 단다는 걸로 외교성과라 자화자찬하는 윤병세는 일본에서 파견나와 외무장관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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