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을 꿈꾸며/이탈리아

로마에 다시 오고 싶다면 꼭 가봐야 할 트레비 분수, 그리고 스페인 광장

자발적한량 200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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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바로크 양식의 트레비 분수는 로마에 있는 300여 개의 분수 중 가장 아름다운 분수로 꼽힙니다. 등 뒤로 동전을 던져 소원을 비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펠니니의 걸작 영화 즉, <달콤한 인생>에서 마스트로이안니와 그램머 아니타가 야회복을 입은 채 물 속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잘 알려진 곳이죠. 트레비는 세 갈래 길이 만난다는 뜻입니다.

 폴리 궁전의 벽에 아치를 만들어 이용한 트레비 분수는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명령에 의해 1732년에 공사를 시작해 30년 후인 1762년에 건축가 니콜라 살비에 의해 완공되었습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혹은 오케아노스)이 아들인 트리톤이 부는 고동 소리에 맞추어 두 마리의 말을 탄 채 물살을 가르고 나오는 다이나믹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말 한 마리는 고분고분하고 다른 말은 뒷발로 일어서 저항을 하고 있다. 이는 잔잔한 바다와 파도치는 바다를 각각 상징하구요.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은 강의 신들에게 바다의 신인 아버지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뿔고동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바다의 신이 등장하고 강의 신들이 고동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강이 범람하고 파도가 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곧 트레비 분수에 묘사된 장면이 구약의 노아의 홍수에 나오는 장면과 유사한 것으로, 지상 세계의 타락을 견디지 못한 신들이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대홍수를 묘사한 것입니다.


 왼쪽 상단의 부조는 기원전 19년, 로마에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길이 20km의 수로 공사를 지시하는 아그리파 황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 오른쪽 부조는 한 처녀가 병사들에게 샘을 일러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처녀가 일러준 샘물이라고 해서 이 수로를 '아쿠아 비르지네', 즉 처녀의 샘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샘은 이렇게 언제나 처녀와 관계된 전설을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포세이돈 양 옆으로는 각각 건강의 여신과 풍요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이 두 여신은 옛날부터 로마 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여신들입니다.


 트레비 분수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갑자기 나납니난다. 그래서 느닷없이 나타난 분수를 보고 “이게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구나”하며 대다수 사람들이 잠시 넋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관광객들은 마치 제정신이 든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주머니를 부스럭거리며 동전을 찾기 시작합니다. 미리 이야기를 듣고 온 사람은 동전 두 개를 꺼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를 던진 다음 다시 동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첫 번째 동전은 로마에 다시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동전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소망을 담은 것이랍니다. 로마에 다시 오고 싶은 이들은 최소 동전 하나라도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모인 동전은 적십자에서 거두어 가는데, 간혹 야음을 틈타 동전을 가져가는 이들이 있다고 하네요. 요즈음은 그래서 경찰관이 배치되어 있고 물에 다량의 표백제를 풀어 놓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태리 어로 '피아짜 디 스파냐'로 불리는 스페인 광장은 로마를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안 가볼 수 없는 곳입니다. 딱히 엄청난 볼거리가 있어가 아니라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보면 잘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윌리엄 와일러가 만든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걸어 내려오던 곳이어서가 아니라, 스페인 광장의 계단에 앉아있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마치 광장에 발을 들여놓는 ‘나’를 환영해주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착각이지만,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또 국적과 인종을 떠나 백인, 아시아 인, 흑인, 아랍 인, 동남아시아 인 등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 중 누구도 넥타이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구두를 신은 사람도 보기 힘들죠. 다시 말해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스페인 광장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들인데, 놀러 온 이들은 평화스럽고 다정하며 그래서 서로 눈인사를 보내곤 합니다. 광장에서 언덕 위의 삼위일체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슬쩍 쭈그려 앉고 보면 마치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은 혹은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초청을 받은 것 같은 분위기에 잠시 젖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 광장의 매력인 것입니다. 거창하게도 평화, 사랑, 우애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고 아무나 보고 말을 걸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난 한국에서 왔는데……”하고..^^; 스페인 광장에서 우애와 평화를 느낀다면,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은 옛날부터 유럽의 코스모폴리탄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습니다. 괴테, 스탕달, 발자크, 키츠, 셸리, 데 키리코는 물론이고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 이곳을 찾았던 예술가들의 발자취와 영혼이 광장과 계단 그리고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면 이곳에서 평화와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17세기 스페인 대사관이 인근에 자리를 잡으면서 스페인 광장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콘도티 가, 코르소 가, 메르세데 가로 둘러싸인 인근 지역은 스페인 영토가 되었스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래서 아무나 통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밤에 잘못 지나다녔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스페인 초병들에게 잡혀가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인들만은 예외적으로 지나다닐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광장 위의 언덕에 세워져 있는 말 그대로 언덕 위의 삼위일체 성당인,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이 프랑스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프랑스 인들은 이곳을 결코 스페인 광장이라고 부르질 않고 프랑스 광장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남의 나라에 와서 서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며 싸웠던 이 상황은 여러 개의 작은 공화국으로 사분오열되어 있던 17세기 이탈리아 반도의 상황을 짐작하게 합니다. 프랑스는 자신들이 돈을 내 계단을 만들어 줄 테니 루이 14세의 기마상을 세우자고 했고, 스페인은 그렇다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그러기를 수십년, 오늘날과 같은 멋진 계단이 생긴 것은 1723년에 시작된 공사가 끝난 1726년입니다.


 스페인 광장에 자리잡고 있으며,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17세기 최고의 바로크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베르니니가 만들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그의 아버지인 피에트로가 교황 우르바누스 8세를 위하여 제작하였습니다. 16세기 말 홍수로 테베레 강이 범람하면서 스페인 광장에까지 배가 좌초되어 떠내려 오게 되었는데, 조각가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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