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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레몬법, 교환·환불 사례 고작 10건... 일부러 노리고 만들었나 싶은 레몬법의 치명적인 허점들

자발적한량 202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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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법'. 1975년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소비자 보호법입니다. 차량 또는 전자 제품이 결함이 있어 일정 횟수 이상 반복적으로 하자가 발생하는 등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제조사는 소비자에게 교환이나 환불 또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죠. 달콤한 오렌지(정상)인 줄 알고 구매했는데, 신 레몬(불량)이었다는 의미를 담아 '레몬법'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한국형 레몬법(개정 자동차관리법 제47조 2항)은 2017년 정용기 현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이 국회의원이었을 당시 대표 발의하여 국회를 통과, 2019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마침 2018년 BMW 차량들에서 연달아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하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었죠. (많은 매체 및 블로그에서 이 BMW 차량 이슈를 계기로 레몬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레몬법의 핵심은 '2, 3, 4 법칙'입니다. 엔진이나 안전 문제로 2회 이상 수리했을 때, 수리를 위해 자동차를 30일 이상 수리센터에 입고했을 때, 동일한 작은 이슈로 4번 이상 수리받았을 때를 말하죠. 

 

그런데 레몬법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바로 적용대상인데요. 우선 이 레몬법은 고객에게 인도된 지 1년 이내, 주행거리가 2만km를 넘지 않은 새 차에 적용이 됩니다. 또한 '하자 발생 시 신차로의 교환 또는 환불 보장 등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이 포함된 서면계약에 따라 판매된 자동차'라고 규정되어 있죠. 그렇기 때문에 2018년 BMW 차량 연쇄 화재 사태 당시 해당 차량들은 이 레몬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강제성이 업기 때문에 레몬법 관련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고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상용차 브랜드들(타타대우상용차, 만트럭버스코리아, 다임러트럭코리아(벤츠), 이베코그룹코리아, 이스즈코리아, 볼보트럭코리아, 스카니아코리아, 동풍소콘, BYD(비야디), 하이거, 스카이웰, 황해자동차, 북경기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레몬법은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 경우 차량이 생계와 직결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또한 미국의 경우 레몬법을 적용한 중재 요청이 들어오면 제조사가 결함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인도일로부터 6개월 이후의 하자는 소비자가 직접 결함이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당장 문제가 생겨 수리도 안되는 상황인데, 소비자가 이를 직접 입증할 자료까지 만들어서 레몬법 적용을 위한 중재를 신청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과연 이를 입증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소비자가 몇이나 될까요.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동일한 일반 하자의 경우 3번 수리 후 4번째 하자가 발생했을 때 레몬법의 적용대상이 되지만, 제조사 측에서 이를 동일한 결함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원인을 파악하겠다고 버티고, 초기 결함 및 품질 상의 하자는 기계인 자동차에서 어쩔 수 없다고 버티는 등 제조사가 적극적인 방어 자세를 취하면 이를 당해내기 쉽지 않죠.

 

마지막 문제점은 바로 차량등록증 상의 소유주만 레몬법 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법인 차량과 리스, 장기 렌터카는 레몬법 중재 신청 자체가 불가하다는 점이죠. 운전자가 차량의 실제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리스나 장기 렌터카는 고객이 계약을 해지할 경우 계약자가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일례로, 아우디 Q7을 계약해 받은 한 소비자가 2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서비스센터 입고만 5차례, 15일을 넘겨 견디지 못하고 계약 해지를 요청했더니 아우디 측에서 2천만 원을 요구했던 사례가 있죠. 리스나 장기 렌터카 회사는 대부분 자동차업체가 보유한 할부 금융사의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들이 모기업에 교환 및 환불을 요구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지난 16일 세계일보 이동준 기자가 '[단독] 시동 안 걸리는 2억 벤츠..“수리해도 동일증상 4번, 마음고생·몸 고생·돈만 나가”'이라는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는데, 기사를 보면 'A씨는 지난해(2022년) 10월 차량가 1억 9000만원에 달하는 벤츠 EQS450 4matic(전기차)을 국내 한 딜러사로부터 장기렌트 받았다'고 하면서, "A씨의 경우 동일증상으로 3회 수리했고 다시 하자가 발생해 레몬법에 해당한다"고 썼는데, 이걸 보면 우리나라 기자들이 얼마나 전문성이 없고, 전문성을 넘어서 일개 블로거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검색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을 모른 상태에서 기사를 써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말 기자질 하기 쉬워요.  

 

여하튼, 레몬법이 있지만 수많은 차량들이 레몬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레몬법이 발효된 2019년 1월 1일 이후 부터 2023년까지 레몬법이에 따른 요청은 약 2,000여 건이었으나, 교환이 이루어진 사례는 8건, 환불이 이루어진 사례는 5건으로 1%도 되지 않는 수치였죠. 이쯤되면 '유명무실'하다는 표현이 적당합니다. 조ㅈ선일보(조선일보)에서 2022년 4월 '한국형 레몬법 시행 3년, 새 차 교환·환불 사례 174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만, 이건 개소리고...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 레몬법의 강제 적용을 강하게 요구해왔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습니다. 자동차 업계 입장에서 본다면 레몬법은 그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끼칠 수 있는 법이고, 자연스럽게(?) 국회의원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듯 침묵하고 있죠. 이런게 바로 민생법안인데 말이죠. 레몬법을 쭉 읽어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법안을 처음 만들 때,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은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 듭니다. 정말 이쯤되면 대놓고 빠져나가세요 하고 구멍을 뚫다 못해 문을 열어 놓은 듯한 느낌이어서요. 어떠신가요, 정용기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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