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밟고 있는 땅/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망월동 5·18구묘지)에는 '전두환 비석'이 있다? 밟으며 되새기는 그날의 역사

자발적한량 2024. 5. 8.
728x90
반응형

5월입니다. 4월 초가 되면 제주도가 주목을 받고, 5월이 되면 광주가 주목을 받죠. 세월이 흘렀지만 광주는 여전히 오월의 성지이며, 민주화항쟁의 성지입니다. 수 많은 정치인들이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러 광주를 방문하곤 하죠. 자, 많은 정치인들이 광주를 방문했을 때 회자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전두환 비석'입니다. 광주에 군대를 보내 시민들을 학살한 살인마의 이름이 붙은 비석이 왜 광주에 있는 걸까요?

 

자, 망월동 5·18구묘지로 가보겠습니다. 정식 명칭은 망월묘지공원으로, 5·18 구묘지, 5ㆍ18 구묘역, 망월묘역, 민족민주열사묘역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곳은 평범한 시립공원묘지였다가 5·18민주화운동 이후 희생자들이 이곳에 매장되면서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1997년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맞은 편에 국립 5·18민주묘지가 생기긴 했지만 이곳은 여전히 민주화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죠. 현재도 이곳엔 6월 항쟁 당시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이한열 열사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자, 그런데 망월묘지공원의 3묘역 입구에는 깨진 검은색 비석 하나가 땅에 묻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두환 비석'. 전두환이 대통령이었던 1982년 3월, 광주를 방문한 전두환ㆍ이순자 부부가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한 마을에서 숙박한 것을 기념해 '마을 주민들의 주도로' 만들었다는데요. 

 

'전두환 각하 내외분 민박 마을'이라고 새겨진 이 기념비는 마을 입구 도로변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두환이 정권에서 물러나자 한 청년이 그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깊은 밤 해머로 비석 일부를 깨뜨려 버립니다. 이 때 전두환의 '전' 글자가 훼손됐는데, 마을에선 비석을 다시 제작했다고 하죠. 

 

이러한 소식은 광주의 한 재야 인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그와 뜻을 함께한 10여 명의 사람들이 1989년 1월 차를 나눠타고 해당 마을로 향했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마을 인근의 석물 공장에서는 "그런 비석을 제작한 적 없다"며 한사코 부인했는데요. 아무리 찾아봐도 끝내 비석을 찾지 못해 돌아가려던 찰나 마을 주민 한 명이 와서 "낙엽과 짚단으로 비석을 숨겨놨다"고 귀뜸을 해줍니다. 5·18 피해자나 유족 등이 비석을 훼손하러 올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마을 주민들이 비석을 숨겨놓은 것이었죠.

 

끝내 사람들은 마을 공터에 쌓인 짚단과 낙엽 속에서 비석을 발견했고, 곧바로 곡괭이로 이를 부숴버렸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당시 전남일보 신종천 사진기자도 현장을 찾아왔는데, 그는 재야인사들이 부서진 비석을 버려둔 채 떠난 뒤 '이 비석을 망월 묘역에 가져다 놔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차로 부서진 비석을 싣고 와 직접 현재의 자리에 묻었습니다. 이렇게 이 '전두환 비석'은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신종천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배객들이 비석을 밟고 지나가도록 하면 상당한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비석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죠.

 

이후 이 '전두환 비석'은 망월묘지공원으로 참배를 올 때마다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묘역 참배를 마치고 나오다 비석의 존재를 듣고선 가던 길을 되돌아와 발로 밟고 지나갔구요.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이한열 열사를 참배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역시 이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이낙연·추미애·심상정 등 진보 성향 정치인들은 대부분 마찬가지 행보를 보였죠.

 

이에 비해 2016년 8월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2016년 8월 이곳을 찾았다가 "나는 밟을 수 없지"라며 비켜 지나갔구요. 국민의당 대표였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2016년 방문 시엔 비석을 밟았다가, 2017년엔 이 비석을 지나지 않는 동선으로 참배를 했다가 '보수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곤 "동선 문제였다"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2023년 전두환의 손자인 전우원 씨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비석을 밟을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누구의 얼굴도 밟고 싶지 않다. 이 세상 누구도. 나의 가족들의 죄에 대해서 정말 죄송하지만, 내 얼굴을 밟아야 된다면 밟겠지만, 계속해서 미움이 증폭되는 세상보다는 결국 원하는 게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거기 때문에 계속해서 미움이 가득한 세상보다는 용서가 가득한 방향으로 가고 싶다. 사죄를 하러 와서 그런 것도 못하냐고 할 수 있는데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민주화 운동을 하셨던 분처럼 평화의 방식으로 사죄를 하고 싶다"고 밝혀 오히려 그 진정성을 존중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아예 망월동 5·18 구묘역을 방문하지 않고  5·18민주묘지를 다녀갔으며, 이에 반해 비석을 2번이나 밟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존경하는 분이면 밟기 어려웠을 텐데"라며 전날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대표로 윤석열 대통령의 사냥개였다가 나중에 삶아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전두환 비석 밟냐 묻는 것은 '김일성 개새끼' 해보라는 식"이라는 되도 않는 비유를 했죠  

총선 전 신당 창당을 선언했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이곳을 방문해 전두환 비석을 밟았을 때는 돌연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페이스북에 "조국 씨발로 어딜 밟는 거예요 그래도 나라의 어르신꼐"라고 썼다가 대중들의 질타를 받은 바 있죠. 이달 6일부터 18일까지 북미 출장 일정이 잡혀있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지난 3일 미리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이동하면서 역시 이 전두환 비석을 밟은 바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