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보, '준4군 체제' 개편 및 해병대사령관 위상 격상 공약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해병대 독립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는 100만명에 달하는 국내외 60여개 해병대 예비역 단체의 표심을 겨냥한 것이죠. 해병대 독립 제안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인 2010년 12월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었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해병대와 특전사를 통합한 '해병특전사령부' 창설을 제안했었죠. 지난 20대 대선에서는 여야 공통 공약이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은 육·해·공군, 해병대 4군 체제 전환에 앞서 해병대사령관을 대장으로 진급시켜 합참차장으로 보임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12·3 불법 계엄의 여파로 좌초됐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5월 10일 해병대 관련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해병대를 독립적인 '준4군 체제'로 개편하고 해병대사령관의 위상을 격상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해병대 임무를 상륙작전·신속대응 전담으로 특화하고, 해병대 독립 회관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습니다. 이른바 "무적 해병을 K국방강국의 선봉에 세우겠다"는 '해병대 정책 발표문'이죠.
해병대의 준4군 편성은 현재 육·해·공군 3군 체제를 당장 4군 체제로 개편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해군 밑으로 해병대사령부를 두는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입니다. 미군도 해병대가 독립돼 있긴 하지만 해군과 해병대의 군정을 상위조직인 해군청에서 함께 담당하고 있죠. 해군사관학교에서 해병대 장교도 배출합니다. 한국군 해병대사령관을 3성 장군에서 4성 장군으로 올리겠다는 것은 해병대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차원에서입니다.
해병대 조직의 1인자인 사령관을 대장으로 임명하려면 군인사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다만 법 개정 이전이라도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 해병대 장군을 합동참모본부 차장이나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임명한다면 52년 만에 해병대 대장이 부활하게 되죠. 과거 해병대사령관이 대장으로 보임된 건 7~9대 해병대사령관 때로 1966년 7월부터 1973년 10월까지 7년 정도입니다. 유신정권 시절인 1973년 10월 10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해병대사령부를 전격 해체하고 해병대를 해군에 통합시키면서 '해병대 대장'은 사라졌죠. 해병대가 1949년 4월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소규모 병력으로 창설된 지 24년 만이었습니다. 이후 1987년 11월 해병대 부대를 통합 지휘할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됐지만 여전히 해군 소속입니다.
쿠데타와 세 차례나 엮인 해병대, 그 기구한 운명의 역사
해병대가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겪게 된 것은 3차례나 쿠데타와 얽혔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5·16 쿠데타. 961년 5월16일 새벽,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김포에 주둔한 해병 제1여단이 선봉을 맡아 한강대교에서 쿠데타 진압에 나선 육군 헌병대를 교전 끝에 제압하고 서울 강북 도심에 진입해, 치안국(현재 경찰청) 등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하려고 1972년 10월 일으킨 친위 쿠데타인 10월 유신. 하지만 이듬해 박 전 대통령은 "자립경제 발전을 위해 경제적으로 군을 관리 운영해야 한다"는 이유로 해병대사령부를 해군에 통합시켰습니다. 당시 군 내부에서는 쿠데타로 집권한 박 전 대통령이 1965년부터 6년 넘게 베트남전에 참전해 수많은 실전 경험을 쌓는 등 전투력이 막강해진 해병대가 5·16 때처럼 쿠데타군 선봉으로 나설 것을 두려워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세 번째는 1979년 10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전두환 등 신군부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체포한 12·12 군사반란입니다. 당시 서울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경비하고 있었던 것이 해병대였는데, 공관 경비대는 전두환 쪽 반란군과 끝까지 싸웠습니다. 해병대가 경비를 맡은 것은 1962년 해병대사령관 공관이 들어서는 등 한남동 공관 터가 원래 해병대 땅이었기 때문이죠. 한남동 공관 터는 해병대가 군사반란에 맞서 민주헌정 질서를 수호한 상징적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대통령실을 서울 용산으로 옮기면서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해병대사령관 공관을 경호처장 공관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3 내란 이후 윤 전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해 한남동 관저에서 경호처를 방패삼아 농성을 벌였죠. 여석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예비역 중령)은 지난 1월 한 세미나에서 "해병대의 역사와 피눈물이 어우러진 한남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혼돈과 추태에 전우분들 모두 분노와 비통을 누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장기 로드맵 마련 중인 해병대, 마뜩찮은 육·해군
군사 전문가들은 해병대사령관 계급이 대장으로 높아지면 육·해·공군참모총장과 위상이 같아져 사실상 4군 체제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국군조직법은 조직을 육군, 해군 및 공군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작전 체계는 4군 체제(육·해·공·해병대)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한편 해군과 육군은 이러한 움직임에 내심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육군은 중장이 지휘하는 군단 병력 규모인 해병대에서 대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마뜩잖아 하는 분위기죠. 해군에서는 아예 해병대가 해군 조직에서 아예 빠져나갔으면 하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준4군 체제가 되면 해군 전체 병력 7만명의 40%가 넘는 해병대가 해군에 속하지만, 사실상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해군 전력 숫자만 잡아먹기 때문이죠. '2022 국방백서'를 보면 해병대 병력은 2만9000여명으로, 만약 해병대가 준4군 체제가 아니라 완전히 독립해 병력이 빠져나가게 되면 해군은 4만1000여명만 남게 되면서, 공군 6만5000여명보다 2만4000여명이나 적어진 해군 입장에서는 병력 숫자를 늘려달라는 명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해병대는 4군 체제로 전환했을 때를 대비해 해병대의 '전·평시 군 지휘체계', '임무·역할 분석', '조직개편·인력확보 방안', '장비·물자 확보' 등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걸림돌도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해병대 역시 육군과 해군처럼 병역 자원 감소의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육군이 주로 수행하는 해외파병 주 임무를 미군처럼 해병대가 맡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방 붙박이군으로 배치하고 있는 해병 2사단의 임무와 역할 변경 역시 마찬가지. 해병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