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이 아닌 광기 어린 모성애의 결정판, 마더(2009)

Posted by 사용자 자발적한량
2009. 6. 21. 23:57 세상에 많은 것들/일주일에 영화 한편

마더
(영화 상세정보는 하단부에 있습니다. 리뷰에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못봐서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에 가족들과 함께 현충일날 마더를 보러 갔습니다.


 도준과 진태는 동네에서 자주 어울려 다니는 친구입니다. 참, 도준은 약간 좀 모자랍니다. 나이는 먹었지만 나이값을 좀 못하죠..차도에서 놀다 벤츠에 치여 진태와 골프장에 쫓아가 교수 일행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경찰서로 가게 되는 두사람..
 

그러나 정작 벤츠 백미러를 부순 진태 대신 도준이 죄를 뒤집어쓰고 합의금을 물어주게 됩니다. 친구라고 함께 다니면서도 불리한 상황이 닥치면 바로 등에 비수를 꽂는 이 모습..어리버리하게 자기가 부쉈나보다~하고 그대로 인정해버리는 도준. 답답하죠.


 그러던 어느 날, 술집 맨하탄에서 진태를 기다리던 도준은 진태가 오지 않자 혼자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 한 여고생의 뒤에서 가게 됩니다. 나름 수작을 걸어보는 도준. 하지만 그 여고생이 던진 돌에 놀라 집으로 달려가죠. 그런데 그 다음날, 그 여고생 이 폐가의 지붕 옥상에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시체가 되어 발견됩니다.


 갑자기 도준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잡혀갑니다. 현장에서 도준이라고 이름이 써있는 골프공이 나왔기 때문이죠. 벤츠를 뒤쫓아 골프장에 갔을 때 주웠던..왜 그 골프공이 거기서 발견됐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준은 잡혀갑니다. 엄마는 당연히 도준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도준도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토로하구요. 여기서부터 도준을 구하기 위한 엄마의 사투가 시작됩니다.


 일단 엄마와 도준의 얘기에 앞서,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회의 단상을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그동안 살인의 추억과 괴물 등에서 봉준호 감독은 경찰의 무능함을 빼놓지 않고 보여주었습니다. 마더에서도 역시 경찰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남 일 얘기하듯 “이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얼마만이냐?”고 말하는 강력계 반장, 그리고 강압적인 분위기의 취조,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어거지로 끼워맞춘 느낌의 현장검증..영화 속 검찰들은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질 않습니다. 시간은 지나는데 달라지는 게 없으니 퇴보한 것이군요. 이것이 바로 얼마 전 영화계의 시국선언문에서 나왔던 '영화는 우리의 사회를 반영한다'는 말이군요..


 도준의 변호를 위해 선임된 변호사는 면회를 와서 도준의 상태를 보더니 급히 자리를 뜹니다. 그리고 도준의 사건에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죠. 그러다가 룸살롱에서 여자들을 낀채 도준의 엄마를 불러 동석한 사람(술이 떡이 되어있는)이 정신병원 원장인데, 살인죄로 감옥에 가는 것보다, 정신병원에 있다오는 게 낫지 않냐며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이런 일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딱 잘라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만..


 또한 살해된 여고생 아정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소녀가장입니다. 아정의 장례식에 온 친척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신경을 썼다고..아정은 일가친척들이 버린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며 삽니다. 먹을 쌋리 없어 몸을 팔았던 그녀의 별명은 '쌀떡소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것이 아닌 쌀을 받고 몸을 파는 정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모습이지요. 여고생의 몸을 탐하는 수많은 남자들..그녀에게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보였을까요?


 자, 이젠 엄마와 도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마더에서 등장하는 것은 분명 엄마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성애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좀 어감이 맞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됩니다. 모성광(狂)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엄마는 도준과 함께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살아 왔습니다. 먹고살기 위한 선택의 폭이 지극히 제한적이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먹고 살기 위해 뭐든지 가리지 않았던 여고생 아정이처럼 엄마도 선택의 낭떠러지라는 처절한 조건에 처했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키운 아들 도준이 살인자로 몰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엄마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광기 어린 사투를 벌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내 새끼만을, 오직 새끼만을 위해 기꺼이 광기어린 악마가 되는 것마저 자처하는 엄마는 인간의 모습을 벗어나 자신의 핏줄을 지키려는 본능의 끈만을 놓지 않고 있는 짐승의 모습과 진배없습니다. 마더에서는 참 많은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들립니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제 새끼를 지키려는 짐승, 발정나 상대방이 어리든 어떻든 제 욕구만 만족시키려는 짐승, 애초에 지가 하고 싶은대로만 하고 사는 짐승..짐승의 울부짖음에 의해 영화는 무척이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들 도준. 그 역시 참 기괴한 캐릭터입니다. 분명 덜떨어집니다. 모자란데..역시 갑작스레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엄마가 사건을 잘 생각해보라고 하자 관자놀이를 안마하더니..갑자기 말합니다. "아, 생각났다. 나 5살 때, 엄마가 농약먹여서 나 죽이려고 한거"...그 얘기를 듣고 경기를 일으키는 엄마. 너무 힘든 나머지 아들과 동반자살하려고 했을 당시를 기억하고 있던 아들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하지만 이내 아들에게 "허벅지에 침을 놓으면 고통스러운 기억은 사라진다”며 침을 놓아주려고 하자, 도준은 다시 말합니다. "왜? 이번엔 침으로 죽이게?"


 다섯 살 때의 일까지 또렷이 기억해 내는 도준이 아정이 살해되던 날 밤 사건을 편의적으로 기억해 내는 모습은 정점을 뛰어 넘습니다. 도준 역시 한 마리의 짐승인 일면을 보여주죠.


 마더는 배우 김혜자에서부터 시작된 영화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그녀가 마더의 발원지이자 종착지라고 표현했죠. 47년 차 중견 여배우. 김혜자. 한국인들에게 그는 한 개인이 아니라 ‘엄마’ 그 자체, 일종의 아이콘입니다. 바닥 모를 사랑과 희생 정신, 엄마에 게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을 완벽한 연기로 구현해 온 그에게서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다른 모습을 보았다고 하네요. 그녀 안에 있었으되 아무도 보지 못했던 히스테릭한 기운과 예민함. TV 드라마에서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강렬하고 파괴적인 모습을 위해 '마더'의 스토리가 구상되었습니다. 김혜자의 가녀린 몸뚱이와 그 안에 내재한 핵폭탄 같은 폭발력이 자아내는 부 조화 혹은 언밸런스를, 관객을 끌고 나갈 영화적 모티브의 핵으로 삼고 있는 영화 '마더'. 평생 만나지 못 했을, 자기 안의 부정적인 에너지까지 고스란히 사용해도 되는 일종의 굿판 혹은 운동장을 봉준호 감독에 의해 비로소 만난 배우 김혜자. '마더'는 70을 눈 앞에 둔, 성년을 통과한 이래 늘 배우였던 한 대가의 필생의 퍼포먼스를 지켜보는, 우리 생애 드문 경험을 약속하는 영화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장르의 특징을 빌어 오면서도 장르의 컨벤션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비틀어 왔습니다. 그 결과 그의 영화는 특정 장르의 고유한 미덕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새롭고 재미있다라는 반가운 선입견을 한국 관객에게 형성시켰죠. '마더'또한 영화적 재미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전작들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탄탄한 드라마, 개성과 매력을 겸비한 캐릭터 군단, 서스펜스 직후의 유머 등. 하지만 한국의 현실이 드라마의 뒤편에서 이야기를 깊게 만드는 실화거나 괴수 장르의 스케일이 있었던 전작과 달리 이 영화에는 오직 ‘엄마’와 그의 진심 어린 ‘사투’가 있을 뿐입니다. 사건 자체의 드라마틱함보다는 극단으로 몰린 ‘엄마’의 심리와 행동 쪽에 방점을 찍습니다. 외형적 스케일보다 내면의 스펙터클에 주목하고, ‘엄마의 사투’를 끝까지 몰아가 그 감정의 등고선에 관객을 동참시키는 것이죠. 감독의 말대로 태양열을 한 점에 모아 태우는 돋보기처럼, ‘엄마’라는 본원적 존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를 치열하게 펼쳐 보이는 정직한 드라마 '마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연쇄살인마가 횡행하는 현실에 무감해진 한국 관객들에게 장르적 힘을 등에 업은 변화구가 아닌 직구. 익숙한 존재, 엄마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정직한 드라마 '마더'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입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제 6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후보작으로 올랐던 마더.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습니다. 마더는 관객이 혼자 생각해야 될 부분이 좀 많습니다. 그런면에서 볼 때 마더는 무책임한 영화?ㅋㅋ 정말 다양한 해석의 결말이 나올 수 있죠.(T군이 본 글 중에 가장 인상깊은 건 도준이 천재다..) 범인에 대하여, 그리고 도준에 대하여..하지만 뭔가 따뜻한 모성애를 생각하고 극장을 찾으신 분들은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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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더
개봉일시 :
2009-05-28
장르 : 드라마

상영시간 : 128분
감독 : 봉준호
출연 : 김혜자(혜자), 원빈(도준), 진구(진태), 윤제문(형사, 제문), 전미선(마을 후배, 미선)
국내등급 : 18세이상 관람가 
T's score : ★★★★(8.5)

시놉시스
읍내 약재상에서 일하며 아들과 단 둘이 사는 엄마. (김혜자 扮).
그녀에게 아들, 도준은 온 세상과 마찬가지다. 스물 여덟. 도준(원빈 扮). 나이답지 않게 제 앞가림을 못 하는 어수룩한 그는 자잘한 사고를 치고 다니며 엄마의 애간장을 태운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살해 당하고 어처구니없이 도준이 범인으로 몰린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엄마. 하지만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 짓고 무능한 변호사는 돈만 밝힌다. 결국 아들을 구하기 위해 믿을 사람 하나 없이 범인을 찾아나선 엄마. 도준의 혐의가 굳어져 갈수록 엄마 또한 절박해져만 간다.

아무도 믿지 마…엄마가 구해줄게…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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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역시 잘만든 영화나 책은 이래서 대단한가봅니다.=ㅂ=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과 다양한 감정들이 드러나게 해주니 말입니다.
    정말 다양한 트랙백들을 보았지만 모두 생각들이 다양각색이라 포스팅들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T군님 말씀대로 동물적 본성을 드러내 엄마를 정면에서 직시하게 만드는 마더라니..
    이것또한 생각지 못했네효~
    잘보고 갑니당~~^^
    • 1004lucifer
    • 2009.06.23 09:58 신고
    정말 사람들마다 느끼는게 많이 틀린가 봅니다. 영화평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
  2. 안녕하세요.잘 읽고 갑니다.^^ 엄마를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스타일쉬하게 표현해내는 감독도 드물다싶어요.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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