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가 떠오르던 콜로세움!

Posted by 자발적한량
2009.01.05 18:02 일상탈출을 꿈꾸며/이탈리아
 콜로세움 인근은 로마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관광 마차, 기념물 장수들 그리고 심지어 물이나 젤라토(아이스크림)을 파는 행상인들 사이로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관광객들이 사진기를 둘러맨 채 오가는 곳이 바로 콜로세움이죠.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수많은 영화와 기독교 순교의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고건물 자체가로마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에 엄청난 규모로 지어진 대 건축물은 보는 이들을 압도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도 합니다. 인근은 포로 로마노 지역으로 역대 로마 황제들의 개선문과 각 황제들이 건축한 포룸의 유적지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고대 로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랍니다.


 콜로세움은 플라비우스 가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명으로 시민들의 오락을 위해 서기 72년 착수되어,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이름도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이었다. 콜로세움이라는 명칭은 인근에 있던 높이 35m의 거대한 네로 황제의 거상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로마가 점령한 지역마다 원형 경기장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경기장입니다. 입석을 포함해 70,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둘레 527m, 높이 57m의 거대한 규모로 맹수와 검투사 혹은 검투사 간의 잔혹한 격투기가 행해지던 곳이죠. 중세에는 요새로서 활용되었고, 그 이후에는 베네치아 궁전과 그 이외의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대리석과 기타 건축재료 채석장으로 사용되어 많이 손상되어 있습니다. 그 규모와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고대 로마 유적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유적지입니다.


 초기에 콜로세움에서는 로마 인들의 종교적인 행사나 신에 대한 제례 의식도 거행되곤 했습니다. 80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 티투스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콜로세움에 대한 낙성식을 기념하기 위해 100일간 계속된 행사를 거행했습니다. 당시 검투사와 야생동물 간의 결투, 검투사 간의 혈투, 마차 경주 등의 각종 경기가 치러졌습니다. 이 행사로 500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당했다고 합니다. 당시 경기나 격투기 장면은 모자이크 등의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영화 <벤 허>나 최근에 나온 <글래디에이터> 등의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 제국 당시에는 콜로세움에 물을 채워넣은 다음 모의 해전까지 치렀습니다. 249년에는 로마 개국 10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000쌍의 검투사들이 이곳에서 혈투를 벌였습니다. 32마리의 코끼리, 10마리 내외의 호랑이, 50마리의 사자가 사살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경기는 다양한 종목이 치러지면서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계속되었고 잔인한 결투로 인해 경기장은 거의 언제나 피로 물들곤 했다고 합니다.


 404년 호노리우스 황제에 의해서 검투사 간의 결투가 금지되었고 야생동물들 간의 결투가 금지된 것은 6세기가 되어서였습니다. 중세에는 콜로세움을 아니발디 등 건축가들이 요새로 개조해 활용하기도 했고, 15세기에 들어서는 베네치아 궁전, 성 베드로 성당 등 건축물의 착공에 필요한 건축 자재를 콜로세움에서 가져다 쓰기도 했습니다. 콜로세움을 채석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 것은 18세기 교황 브누아 14세 때에 들어서였습니다. 만일 이 교황의 현명한 판단이 없었다면 콜로세움은 다른 유적지들처럼 기초 부분이나 기둥 몇 개만 남은 폐허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후 콜로세움은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성지로 봉헌되었고 이어 원형 경기장을 둘러싼 십자도로가 개통됩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수도승이었던 베데는 8세기 초 콜로세움의 역사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콜로세움이 존속하는 한 로마는 존속될 것이다. 콜로세움이 무너지면, 로마도 무너질 것이며, 로마가 무너지면, 세계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콜로세움은 무너지지 않았고 로마도 계속 존속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무너질 리도 없겠지만, 콜로세움 덕택에 로마는 일년에 1,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유럽 최대의 관광 도시가 되어 있습니다.


 콜로세움은 기둥으로 받쳐진 3층의 아케이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1층은 도리아 양식, 2층은 이오니아 양식, 3층은 코린트 양식의 원주가 각각의 아치를 받치고 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집권기에는 평평한 벽면에 청동 방패를 걸어 장식했고 삼층 꼭대기에는 관람객들을 눈과 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차양을 치기 위해 파놓은 홈이 남아 있습니다.



 석회석의 일종인 석회화로 지어진 콜로세움은 금속으로 각 부분을 접합했고 구멍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지만, 금속 부분은 중세시대에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콜로세움을 건축하는 데 사용된 건축 자재들은 로마 교외 티볼리 인근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를 운반하기 위해서 6m 너비의 도로가 새로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콜로세움은 타원형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타원형 경기장의 계단식 관람석 중앙에는 황제와 그 수행원의 특별석이, 그리고 북쪽과 남쪽에는 로마 장관과 집정관들을 위한 특별석이 각각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경기가 이루어지는 경기장 바닥에서 4m 떨어진 높이에서부터 관중석이 시작됩니다. 계단식 관람석의 앞부분은 난간이 설치되고 대리석으로 만든 자리로, 귀빈들이 앉는 자리였습니다. 그 뒤로는 관람석을 3개의 층으로 나누어 사이사이에 경사진 통로가 지나가도록 구획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은 꼭대기에 주랑으로 받쳐진 그늘진 곳에서 경기를 관람했으며, 노예들은 그 위 테라스에 서서 구경했습니다. 대략 45,000석이 제공되며 5,000명 가량이 입석으로 관람이 가능하였습니다. 하지만 빽빽이 들어설 경우 총 70,000명 정도가 동시에 관람할 수가 있었죠.


 이탈리아의 전 일정을 함께했던 현지 가이드님과 한장 찰칵..베네치아에서 로마에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해서 로마, 나폴리, 폼페이, 피렌체 모두 가이드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바티칸을 제외한 로마의 모든 투어는 밴을 타고 이루어졌습니다. 선택 옵션이었긴 하지만 밴을 타지 않고 걸어서 돌아다녔으면 아마 탈진을 해도 몇 번은 했을 듯..이렇게 로마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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