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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장의 만남-마르타 아르헤리치 & 정명훈

자발적한량 2008.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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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7일 예술의 전당에서는 올해 최고의 연주회로 뽑힐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아르헤리치-정명훈, 두 거장의 화려한 만남.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피아노의 여제'라는 찬사를 듣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연주. 두근거리는 마음을 뒤로 하고 콘서트홀에 입장하였습니다. 8시가 되었고 오케스트라가 입장하여 튜닝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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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장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정명훈

 악기배치가 좀 특이했던 점이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많았다는 점인데, 무대 오른쪽을 첼로와 베이스가 점령해버리는 탓에 비올라가 목관과 첼로사이부터 지휘자 바로 앞까지 두동강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 금관을 일렬로 배열했는데 만약에 TV중계를 했다면 카라얀의 영상물같은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훨씬 지나서도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예매를 한 순간부터 아르헤리치의 프로코피예프를 들을 시간을 애타게 기다렸기에, 그 몇 분은 훨씬 더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녀가 입장하자마자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거의 벌써 공연이 끝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박수가 잦아들자마자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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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헤리치의 예전 연주 장면


 그녀는 클라리넷으로 시작하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서주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어서 시작하는 상행음계는 화려함과 함께 마치 타악기처럼 정확하게 건반을 내려치는 힘으로 귀를 압도했습니다. 안정적인 체구로 피아노를 압도한 채 전혀 힘들이는 기색 없이 난곡을 연주해 내는 그녀의 모습은 과연 피아노의 여제라 불릴 만 했지만, 지휘자와 계속 눈을 맞추며 호흡을 조절하는 모습은 혼자만 질주해 나가는 괴팍한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관객들과 눈을 맞추길 수줍어하며 90도로 인사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성실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어 온 대가의 조심스러운 자신감과 관록마저 느껴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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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변한 외모..


 내가 아르헤리치의 손가락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녀가 마치 피아노 건반을 어르듯 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작은 강아지를 어르듯, 피아노를 어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소리를 저토록 쉽게 낼까...정말 그녀에게는 피아노 건반이 너무 좁은 듯 했습니다. 연주가 3악장의 막바지를 향할 때는 연주가 끝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워 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좀 짧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순식간에 끝나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연주 내내 들어야할지 봐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듣는 것과 보는 것을 함께 하기 힘들 정도로 양쪽 다 매혹적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집중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음반에서의 강한 느낌은 덜했습니다. 미묘하게 오케스트라와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고 미스도 몇 번 났었지만 콩쿨도 아니고 그 정도 미스를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몇 번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건반과 관객들을 압도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다만 3악장의 코다에서 오케스트라에 피아노 소리가 묻혀서 피아노 소리가 제대로 안 들려 아쉬웠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밸런스에서 문제되는 건 바이올린이 튀거나 목관이 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이올린 소리가 묻힌다는 점이었는데, 분명 연주는 하고 있는데 들리지 않아서 답답한 경우가 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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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즐기는 아르헤리치


 작년 '아르헤리치와 친구들' 공연에서도 끝내 독주를 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앵콜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몇 번의 커튼콜 후에 스카틀라티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한 두번의 커튼콜 후에 또 망설임없이 두번째, 세번째 앵콜을 연주했습니다. 독주를 세 곡이나 들을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것만으로도 황홀했지만, 쇼팽 마주르카와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은 이제껏 듣던 곡들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었습니다. 섬세하고 가벼운 소품이지만, 진흙 속에서 진주를 건져 올리는 것처럼 진득하고 풍부한 울림을 가진 저음이 곡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아련한 애수마저 느끼게 했다. 악기와 곡이 가진 아름다움에 세월의 안정감을 더해, 사랑스러운 곡은 이전에 없던 깊이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피아노의 저음이, 한때 화려한 주목을 받았지만 혼자만의 무대보다 함께 울리는 화음의 아름다움을 더 사랑하게 된 그녀의 음악 여정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여,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 속 깊이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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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 성성한 그녀..

 이제 70대를 바라보는 피아노의 여제 아르헤리치에게선, 젊은 시절의 날카로움은 조금은 무뎌지고, 세상과 화해한 안정감과 자애로움마저 느껴집니다. 무대에서의 외로움을 거부하고 20여 년 동안 독주무대를 자제하고 협연과 실내악 연주에 몰입하면서,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음악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줍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피아노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편안하고 안정감있는 음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음들이 날이 선 듯 불쑥불쑥 튀어나왔던 젊은 시절의 그녀의 연주보다, 화려하고 파워풀한 기교를 보일 기회는 다소 적지만 함께 호흡하고 서로 눈을 맞추며 음들을 조율하는 실내악, 혹은 듀오 연주에서의 그녀의 모습이 훨씬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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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여제

 3번째 앵콜을 마친 아르헤리치가 결국 직접 악장을 일으켜 데리고 들어가고서야 1부가 끝이 났습니다. 세계적인 콩쿨의 심사위원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하고 연주 스케줄을 하루 전에 바꾸기도 하고 심지어 취소하기도 하고, 연주에서는 피아노 줄을 끊는 강력한 타건으로 오히려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연주가 가장 강렬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난 아르헤리치는, 피아노에 성실하고 연주에 충실한 연주자였습니다. 그녀의 행동이 그저 그녀가 기분파이거나 제멋대로여서가 아니라 모두 보다 낳은 연주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악장 사이에 박수에 가까운 기침들이 터져 나오는데다가 오케 소리만 작아지면 천식, 감기환자인 분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기침을 해댔는데 이걸 무시하고 연주에 집중하느라 좀 힘들었습니다. 박수는 거의 ‘안다박수’에 가까웠지만 아르헤리치라는 점과 연주의 완성도를 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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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발전하는 서울시향


 T군은 브루크너에 대한 정보가 없었습니다. 사실 관심도 없었고..아마도 잘 몰라서겠지만 그래서 이것저것 읽고 있던 중 정명훈이 들어왔고 역시 우레와 같은 박수로 연주는 시작됐다. 잘 모르는 곡이라 그렇게 느꼈던 걸까요? 설명에는 오르간풍의 장엄한 소리를 낸다고 써있었는데 1악장에서는 단원들도 흥분이 된건지 각 파트의 음은 정교하고 깔끔했으나 파트 간의 비율을 맞지 않아 말 그대로 조금 시끄러웠습니다. 얼른 다시 그들의 페이스를 찾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1악장 마지막이 되가면서 그들은 점점 조정해갔고 마무리는 허공에 , 즉 우리에게 보내주든 마무리 됐습니다. 그리고 2, 3, 4악장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분명히 서울시향은 진화했다는 점입니다. 관악기의 타이밍 뿐만 아니라 소리자체가 이뻐졌고 균일해졌습니다. 그리고 멜로디간에 이어짐이 부드러워 T군은 보는 내내 놀라움의 표정이었습니다. 특히 3악장은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정말 다른 곡 같은 느낌이었을 정도로요.

 그러나 내가 내부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곡은 정명훈의, 그리고 단원들의 마음에도 그리 썩 좋았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준비해서 잘하는대까진 했지만, 자유로운 곳 까진 못간 듯 했습니다. 한 커풀이 더 벗겨졌더라면 더 좋았을 꺼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요. 그리고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여러모로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많고 곡 자체가 길기 때문에 지휘자나 단원이나 그리고 관객까지 끝까지 집중해서 연주하고 듣는데 굉장히 어려운 곡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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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장의 만남-마르타 아르헤리치 & 정명훈
장소 :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일시 : 2008년 05월 07일(수) 저녁 7시 30분
티켓 : R석 20만원 S석 16만원 A석 12만원 B석 8만원 C석 5만원
주최 : (주)CMI, (재)서울시립교향악단
후원 : CMI
Program
S.Prokofiev
Piano Concerto No.3 in C Major, op.26
I. Andante - Allegro C major
II. Tema con variazioni e minor
III. Allegro ma non troppo C major

A.Bruckner
Symphony No.6 in A Major
I. Majestoso A major
II. Adagio : Sehr Feieirlich F major

Profile
 1941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아르헤리치는 5살때 처음으로 빈센초 스카라무자로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1955년 가족과 함께 빈으로 이주, 이곳에서 프리드리히 굴다의 지도를 받았으며 니키타 마갈로프, 스테판 아쉬케나제로부터도 배웠다.

 1957년 볼자노와 제네바의국제 콩쿨에서 우승했고 1965년 바르샤바 쇼팽 콩쿨에서 우승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갈 수 있었다. 아르헤리치는 19세기와 20세기의 비르투오조 피아노 작품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비르투오조’ 작품의 스페셜리스트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레퍼토리는 바흐에서 베토벤, 슈만, 리스트, 드뷔시, 라벨을 거쳐 바르톡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특히 80년대 초반 이후 그녀의 프로그램에서 보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베토벤의 음악들이다.

 아르헤리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기돈 크레머의 록켄하우스 페스티벌 그리고 뮌헨 피아노 섬머 등지에서 연주를 해왔다. 1992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는 샤를르 뒤트와가 지휘하는 파리 국립 관현악단과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 3번을 협연했으며 1992년 신년 이브 콘서트에서는 아바도, 베를린 필과 슈트라우스의 ‘부를레스케’를 연주했다. 1993년 8월에는 미샤마이스키와 함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다.

 아르헤리치와 도이치 그라모폰사와의 관계는 1967년부터 긴밀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동안 그녀는 수많은 음반들을 녹음했는데 바흐, 브람스, 쇼팽, 리스트, 프로코피에프, 라벨 그리고 슈만등의 독주곡, 아바도와의 쇼팽, 리스트, 라벨,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뒤트와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시노폴리와의 베토벤 협주곡, 로스트로포비치와의 슈만, 쇼팽 실내악곡, 미샤 마이스키와의 바흐 첼로 소나타 그리고 베토벤 첼로 소나타 등이 대표적인 음반들이다.

특히, 기돈 크레머와 함께 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은 그녀의 주요 프로젝트중 하나다. 또한 그녀는 크레머와 더불어 슈만의 소나타, 바르톡, 야나첵, 메시앙 등의 작품과 함께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조인트 앨범인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와 멜로디는 1992년 ‘동경 레코드 아카데미’, ‘디아파종’, 1993년 ‘에디슨 어워드’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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