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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아픔을 잊지 말자, 임을 위한 행진곡 by T군

자발적한량 2008.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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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린 노래로서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1980년 12월)에서 가사를 따와 광주지역 문화운동가인 김종률씨가 작곡을 하였습니다. 이 노래는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에서 영혼 결혼을 하는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발표되었습니다. 그 뒤, 1982년에 제작된 음반<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민주화운동은 물론 각종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운동단체의 집회를 시작하는 때에 '민중의례'의 일부로서 널리 불렸습니다. 또한 중국어 등 외국어로도 번역되어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2008년 대한민국의 대중 집회에서도 보편적으로 불려지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광주 항쟁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과 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에서 영혼 결혼을 하는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작곡되었습니다. 기타와 괭과리의 반주가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호탕하면서도 투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지금 우리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고 부르는 마지막 구절이 원래는 '앞서서 가나니'였다는 점은 이 노래의 맥락을 짐작하게 합니다. 즉 두 영혼이 '우리는 앞서서 가니 살아 있는 자들이여 기운을 내어 뒤를 따르라.'고 독려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다짐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초 광주항쟁의 패배감과 좌절감을 극복하고 승리의 의지와 투쟁적  역동성을 획득해낸 최초의 작품입니다.  광주항쟁 직후인 1981년에 광주항쟁은 '항쟁'으로서보다는 '대학살'로 다가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엄청난 죽음에 충격받고 주체할 수 없는 패배감과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로서의 자괴감, 죄의식에 젖어 있었고, 이러한 패배감과 자괴감은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까지 진보적 지식인들 속에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찍이 그 패배감과 자괴감을 올바르게 극복해냄으로써 1980년대 새로운 노래의 시대를 열었던 것입니다.
 
 현재 '임을 위한 행진곡'하면 마치 꼭 운동권이나 노동계에서 투쟁목적이라는 잘못된 통념과 오해가 있지만 이곡은 80년 5월의 광주를 추모하기 위해 불려진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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