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땅에서 이루어져 온 역사 속에서는 수 많은 위인들이 있습니다. 만주벌판을 호령하며 민족의 기상을 드높인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 당나라의 대군을 살수대첩으로 막아낸 을지문덕 장군, 삼국통일의 최선봉에 선 김유신 장군, 제 좌우명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는 말을 남기며 불교 대중화에 기여한 원효대사, 후삼국 시대를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 거란의 침입으로부터 귀주대첩에서 나라를 구한 강감찬 장군, 비록 피를 많이 흘렸지만 강한 통치력으로 국가의 기틀을 잡은 태종 이방원, 세계가 놀라워하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임금도 도망간 나라를 지켜내고 구국의 영웅이 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며 자신이 남긴 글귀인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표본이 된 안중근 의사, 윤봉길·이봉창 의사를 비롯해 일제강점기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간..이름을 언급하기엔 너무나 많은 독립운동가들...그리고 6·25전쟁으로 조국의 운명이 사그러질 위기 속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 수 많은 참전용사들...마지막으로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온 민주운동가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하였던가요? 고대사에서부터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라가 위험에 빠지고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민족과 국가를 지켜내고자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졌던 분들이 나타났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마 한 명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위인이 있겠죠. 저도 대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이순신 장군도 존경하고, 안중근 의사도 존경하고.. 많은 분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명을 고르라고 하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현대사의 인물이며, 제 사상을 비롯한 많은 것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더욱 와닿는 것일 수도 있겠죠. 바로 故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으며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포스팅이라는 것을 설명했는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 씨가 사진 에세이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를 발간했습니다. 장철영 씨는 2012년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을 담은 사진 에세이를 펴냈었는데요. 오는 20일, 처음 펴낸 사진 에세이에서 공개되지 않은 미공개 사진 50여장이 담긴 사진 에세이가 다시 발간된다고 합니다. 경향신문에서 그 중 20장의 사진을 단독 입수해서 공개했습니다.
유난히 사진 기록물이 많은 노무현 대통령.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는 이를 두고 '사진만 찍고 다녔다'며 폄하하기도 했는데요. 장철영 씨는 주간지와 외신 사진기자로 활동하다 대통령 전속 사진사로 발탁된 뒤 '사진은 기록이고, 기록은 역사가 된다'는 믿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식 일정 뿐 아니라 일상적인 모습까지도 모두 촬영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은 이 파격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정작 자신은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모든 정보가 모든 국민들에게 공유되는 세상을 원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모습 하나하나도 후대에 남길 역사가 되리라 생각했던 것이었겠죠. 장철영 씨가 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촬영한 사진이 자그마치 50만장이라고 하네요.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1월9일 관저 소회의실에서 아침회의 ⓒ 장철영
[청와대 직원 누구나 드나든 관저] 관저 내 소회의실입니다. 장씨에 따르면 관저 내에는 소회실·접견실·대식당이 있다고 하는데요. 대식당은 대회의실로도 쓰이며 장관·수석들과 부부동반으로 종종 식사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회의실에서 아침 7~8시 사이 부속실 등으로부터 일일보고나 간이 브리핑을 받았다는군요. 비서실장 주재 회의도 종종 이뤄졌구요. 원래 청와대 출입증은 비서동·본관·관저 별로 색깔이 달랐다. 장씨는 "노 전 대통령이 색을 통일했다. 그래서 업무상 관저에 보고서를 올리고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1월9일 집무실에서 회의 ⓒ 장철영
[청와대 소집무실 회의 풍경] 청와대 본관 소집무실입니다. 회의 전 휴식을 취하거나 임시 회의를 하는 곳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전비서관과 연설기록비서관 등과 회의 도중 장씨를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4년12월 3일 ⓒ 장철영
[담배 피우는 대통령] 애연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이번에 공개된 사진만 하더라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이 무척 많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많은 추모객들이 향 대신 노 대통령이 즐겨 피웠다는 클라우드 나인을 올리기도 했죠.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 1월9일 집무실에서 회의하기 직전 ⓒ 장철영
[기름종이로 얼굴 닦는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 회의 직전 메이크업 뒤 기름종이로 얼굴을 닦아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2월14일 부시대통령과 6자회담관련 전화통화를 하기 직전 모습 ⓒ 장철영
[부시와 통화 준비…모든 대화 녹음]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스페인의 한 호텔에서 6자회담과 관련해 미국 부시 대통령과 통화를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장씨는 "국가 수반 끼리의 통화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녹음 장치를 통해 모든 대화를 녹음하며, 통역관이 대통령의 대화를 들은 뒤 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된다"고 자신이 본 모습을 전했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1월 9일 관저에서 얼굴화장하는 노대통령. ⓒ 장철영
[화장하는 노무현] 관저에서 메이크업 받는 노무현 전 대통령, 보통 행사가 있는 날 아침 7~8시 행사 직전 10분 간 간단히 받았다고 장씨는 전했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2월23일 녹지원 산책 ⓒ 장철영
[기능직 공무원은 숨지 않았다] 청와대 본관 앞 녹지원. 사진의 소로는 참여정부 때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장씨는 "이전까지 기능직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나타나면 숨기에 바빴다"고 했습니다. 사진 왼쪽의 기능직 공무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없애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권위주의였죠.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9월13일 청와대에서 손녀와함께 ⓒ 장철영
[청와대 본관 잔디서 손녀와 과자먹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앞 잔디밭에서 손녀에게 과자를 먹여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잔디밭은 원래 조경용이었다고 하는데요. 장씨는 "역대 대통령 중 들어가 앉은 분은 노 전 대통령이 최초"라고 전했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9월13일 청와대에서 손녀와함께 ⓒ 장철영
[손녀를 목말 태우고]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앞에서 손녀와 놀다 함께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6년5월20일 관저내 경호실 방문 ⓒ 장철영
[역대 대통령 첫 청와대 경호실 방문] 청와대 관저에 들어가기 전 관문인 인수문 옆의 경호실이 있는데요. 관저로 들어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호실을 들러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장씨는 "역대 대통령 중 경호실을 들여다 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처음일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장씨는 "이곳에서 관저 출입자와 출입 시간을 분단위로 기록한다"고도.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5년4월23일 낚시하는 노대통령 ⓒ 장철영
[빈손 낚시에 실망한 노무현] 진해 앞바다에서 손낚시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주위 권유에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했으나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실망했다고 장씨는 전했습니다. 국방무늬 야상이...잘 어울리네요. 역시 병장 출신..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5년4월23일 충렬사 방문 ⓒ 장철영
[권양숙 여사 앞 "나 힘쎄요" 국궁 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렬사 옆 활궁장에서 국궁 시위를 당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장씨는 "'힘도 없으시면서'라는 권양숙 여사의 핀잔에 '나 힘 쎄요'라고 받아치셨다"고 전했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1월14일 필리핀 세부 숙소에서 ⓒ 장철영
[순방국 숙소서 양치질하는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필리핀 세부 순방 당시 숙소에서 호텔 매니저 안내를 들으며 양치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장씨는 "양치하는 모습까지 사진을 찍자 노 전 대통령께서 '이런 것까지 찍어요? 나중에 퇴임 하면 경호원, 사진사, 수행비서 다 빼고 우리 둘(노 전 대통령과 권 여사)만 다닙시다'라며 귀찮아하셨다"고 전했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5년10월18일 골프연습 ⓒ 장철영
[골프 스윙 연습하는 노무현] 태릉의 골프 연습장. 장씨는 "노무현 대통령님은 골프를 좋아하셨지만 여론을 의식해 마음껏 즐기지는 못하셨다. 자세는 좋으셨다"고 했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6년10월29일 시화호에서 ⓒ 장철영
[장화 신고 시화호 비공개 현장 방문] 시화호 현장을 비공개로 전격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화를 신고 갯벌을 걷고 있는 모습입니다. 장씨는 "노무현 대통령님께선 이슈 현장이나 사고 지역에 거의 즉각 달려가셨다. 현장에 가면 주민들이나 피해자도 만나지만 대민 지원을 나온 군 장병들의 처우도 반드시 챙기셨다"고 했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7월14일 밀양 영남루에서 ⓒ 장철영
["다른 사람도 벗는데…" 신발 벗고 영남루 입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밀양 영남루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 모습입니다. 장씨는 "당시 안내인들이 '대통령님은 신발을 신고 마루에 올라가셔도 된다'고 했지만 대통령님께선 이 말을 하며 신발을 벗으셨다. '다른 사람도 벗는데…'"라고 전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머릿 속에선 아무리 자신이 대통령이어도 모두가 신발을 벗어야 하는 곳에서 자신만 벗지 않는다는 것은 특혜로 인식된 것이죠.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4년3월12일 탄핵가결후 공항에서 ⓒ 장철영
[탄핵안 의결날 비행기 오르는 대통령 내외] 2004년 탄핵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날, 창원에서 공식 일정을 마친 후 비행기에 오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모습입니다. 장씨는 "그날 '다시는 저 비행기를 못 타실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살려낸 것은 바로 국민들의 촛불이었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야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차이일까요?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8년 2월 3일 저도 도착 ⓒ 장철영
[퇴임 20여일 전 대통령 내외] 임기 종료 20여일을 앞두고 저도의 대통령 휴양시설을 찾은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 장씨는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어 초점을 제대로 맞출 새도 없이 촬영했다"고 합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9년5월29일 노무현대통령 장례식날 아침 봉하마을 사저에서 ⓒ 장철영
[장례식날 아침, 봉하 사저 도는 盧의 영정]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날 한 장면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가 영정을 들고 봉하마을 사저를 돌고 있는 모습입니다. 장씨는 "눈물로 찍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9년5월29일 노무현대통령 장례식날 아침 봉하마을 사저에서 ⓒ 장철영
[장례식날 마지막 지킨 '3인방'] 장례식날. 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을 지켰던 '3인방'의 모습. 왼쪽부터 문용욱 부속실장·박은하 비서관·김경수 비서관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연설문 하나 제대로 못 쓰고 옷도 고를 줄 모르는 박근혜 대통령이 수십년에 걸쳐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에게 놀아나고, 그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재벌들에게 자금을 강요하고, 자금을 낸 재벌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국민들의 피와 땀인 국민연금의 손실까지도 감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수 많은 아이들의 목숨이 사그러져 가는 상황 속에서 '관저에서 충실히 업무를 봤다'며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눈시울이 젖는 느낌입니다.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꽁꽁 싸매고 비밀스럽지 않고 되려 담배를 피우고, 산책을 하고, 화장을 하는 모습까지도 국민들에게 공개하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 그분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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