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헌법재판관 후보자 2인 지명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권 행사가 눈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그간 임명을 보류해오던 마은혁 헌법재판관과 마용주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동시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각각 지명했습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8일 국무회의에 앞서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사심 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고자 최선을 다했으며, 제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음을 말씀드린다"며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한 데 대해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한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헌재 결원 사태가 반복돼 헌재 결정이 지연될 경우 대선 관리, 필수 추경 준비, 통상현안 대응 등에 심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며, 국론 분열도 다시 격화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한 한덕수 권한대행은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았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죠. 마지막으로 한 권한대행은 "마 재판관님과 두 분의 합류를 통해 헌법재판소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헌정질서의 보루라는 본연의 사명을 중단없이 다해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명된 이완규 법제처장 '윤석열의 법률적 호위무사', '안가 회동 4인방'
우리는 이완규 법제처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완규 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79학번,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로 만나 검사 생활을 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입니다. 둘은 실로 막역한 사이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4일 밤 용산 대통령 안가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과 함께 회동을 했던 이른바 '안가 회동 4인방' 중 한 사람이죠.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로 재직할 때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자 변호사로서 징계 처분 취소소송을 대리했고, 윤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에는 처가 의혹 관련 소송에 대리인으로 나서 '법률적 호위무사'로 불렸습니다.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행정부 내 법률 유권해석 기구인 법제처의 장을 맡았고, 법무부가 입법예고 이틀 만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한 것도,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 신설도 문제없다고 판단하며 윤석열 정부를 지원했습니다.
이 처장은 지난 2월 윤석열 정부 내란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에 출석해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조치에 대해 "헌재에서 위법이라 판단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정당한 권한행사"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얼마 후 만장일치로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상황을 위헌이라고 결정했죠. 헌재의 만장일치 판단과 배치되는 인식을 가진 인물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강력 반발, "권한남용이자 헌정질서 파괴 행위"
더불어민주당은 당연스럽게도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지명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8일 민주당은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헌법 유린 만행"이라고 규정하면서 지명 즉각 철회를 촉구하는 한편 "권한쟁의 심판과 가처분 신청을 통해 이번 지명이 원천적 무효임을 밝히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8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진행하던 도중에 한덕수 권한대행이 함상훈·이완규 2인에 대한 헌법재판관 지명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란 세력의 헌법재판소 장악 시도"라며 어처구니 없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기가 대통령이 된 걸로 착각한 것 같다, 오버하신 것 같다"라며 "토끼가 호랑이굴에 들어간다고 호랑이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한덕수 권한대행을 비판했죠.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긴급 입장문을 통해 "국회는 인사청문회 요청을 접수받지 않겠다.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면서 "사과부터 하고 지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시민사회 역시 "권한남용이자 헌정질서 파괴 행위"라면서 지명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이날 성명에서 "한덕수는 내란세력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려는 권한남용을 즉각 중단하라"며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직무유기와 더불어 헌법재판소를 내란세력으로 장악하겠다는 직권남용 역시 헌정질서 훼손이자 범죄행위"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측에서는 한덕수 권한대행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마은혁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대해 "여야 간에 합의가 없는 마은혁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한덕수 대행께서 4월 18일이면 공석이 되는 두 명의 헌법 재판관을 지명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며 "용단을 내린 것이고 용기를 낸 것"이라고 한덕수 권한대행을 추켜세웠습니다.
황교안 전 총리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역대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은 세 차례 있었습니다. 2017년 3월 황교안 전 권한대행이 이선애 전 재판관 임명, 지난해 12월 31일 최상목 전 권한대행의 조한창·정계선 재판관 임명이 그것입니다. 이선애 전 재판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지명 몫이었고, 조·정 재판관은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이었죠.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3명을 지명한 전례는 없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을 하지 않은 선례는 헌정사에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심판이 한창이던 2017년 1월3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박한철 헌재소장이 퇴임하자 박근혜 쪽 대리인단과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후임자 임명을 촉구했지만, 황 권한대행은 끝내 지명하지 않고 차기 대통령에게 임명을 넘겼습니다. 반면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 파면 선고 직후인 2017년 3월13일 임기가 끝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후임(이선애 재판관)은 바로 임명했죠. 대법원장 추천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법조계 "한덕수 재판관 지명 '위헌 행위'", 하지만 권한대행 권한 규정 애매
법조계에서도 한덕수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에 대해 '위헌 행위'라는 목소리가 큽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학계에서는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에 관한 일반 원칙은 현상 유지적인 소극적 권한에 한정하고, 현상을 변경하는 적극적인 권한은 행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차 교수는 "이론적으로 보면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지명 몫 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행위는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위헌"이라고 지적했죠.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 역시 "위헌적인 행위이자 월권이다. 2개월 뒤 대선에서 선출될 대통령이 임명해야 할 몫"이라며 "임명을 강행하게 되면 심각한 헌법 분쟁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관한 헌법·법률상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법조계에선 '현상 유지만 하는 소극적 행사만 가능하다' '국가안보를 위해 군 통수권 행사나 조약 체결 등 적극적 행사도 가능하다' 등 해석 논란이 분분합니다. 즉, 어디까지가 적극적 행사인지 소극적 행사인지 법에 의해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이죠.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아낼 방법이 뚜렷하게 없다는 것. 민주당에서 권한쟁의심판 제기를 예고하고 나섰지만 권한의 당사자는 대통령이고 지금 대통령이 공석이라 적법하게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치명적인 빈틈이 있습니다. 즉, 민주당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다고 해도 대통령 권한이지 국회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각하될 사안인 것이죠. 게다가 기본권이 아니기에 헌법소원 심판으로는 안 되고, 법률도 아니라 위헌법률심판도 할 수 없습니다.
인사청문회법 '인사청문 요청안을 접수하면 20일 이내 심사를 마쳐야 한다'(6조 2항) 따라 따르면 국회는 두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마쳐야 합니다. 만약 기간 내 청문 절차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10일 이내의 범위에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송부해 줄 것을 요청'(6조 3항)한 후 '국회가 송부하지 않은 경우 임명할 수 있다'(6조 4항)에 따라 두 사람을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현 상태에서 한 대행을 다시 탄핵소추해 직무정지하는 방법이 유일한 저지 방법이란 지적도 나오지만, 이후 대행의 대행의 임명을 막진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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