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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는 전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전체 인구 2,000만명 중 26%가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등 주변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죠. 가난을 피해 이주한 이들은 코트디부아르 북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코트디부아르 원주민과 주변국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 사이의 갈등이 원인이 되어 2002년 9월부터 커다란 내전이 일어납니다.
2000년, 남서부 출신인 그바그보 대통령 후보는 "부모 양쪽이 이부아르인(코트디부아르 사람)이어야 대선 후보자가 될 수 있다"며 국민들을 자극하며 이부아르인의 정체성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북쪽 지역을 대표하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 와타라 전 총리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출생하지 않는 외국 이주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했죠.
인종차별은 종교 갈등의 성격도 띄고 있었습니다. 이주민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었습니다. 이에 반해 코트디부아르 원주민인 남부 기득권층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천주교를 믿었지요. 이슬람권이 주축이 된 북쪽 반군은 기독교가 중심이 된 남쪽 정부군이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수출 이득을 갈취하고 있다는 핑계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코트디부아르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게 되죠.
인종차별은 종교 갈등의 성격도 띄고 있었습니다. 이주민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었습니다. 이에 반해 코트디부아르 원주민인 남부 기득권층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천주교를 믿었지요. 이슬람권이 주축이 된 북쪽 반군은 기독교가 중심이 된 남쪽 정부군이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수출 이득을 갈취하고 있다는 핑계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코트디부아르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게 되죠.
프랑스군의 개입으로 잠시 정전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군 사이에 유혈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급기야 유엔 평화유지군이 투입되었죠. 유엔 안보리가 나서서 평화 회의도 마련했지만,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내전은 장기화되어갔습니다. 70여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죠.
전쟁이 계속되던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이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쥔 날이었죠. 코트디부아르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습니다. 그 소식은 긴 내전으로 지친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에게 단 하나의 희망으로 다가왔죠. 코트디부아르 선수 중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소속으로 뛰며 두 번의 시즌에서 득점왕을 기록한 디디에 드로그바가 있습니다. 동료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던 드로그바는 라커룸 안에서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적어도 1주일 동안 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마이크를 붙잡고 드로그바는 코트디부아르 국민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드로그바의 호소로 1주일간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총성이 울리지 않았죠. 국민들은 서로를 겨누던 총부리를 거두고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축구가 인종차별과 종교갈등, 빈부격차를 극복하게 한 것이죠. 1주일 뒤 싸움은 재개됐습니다. 하지만 2007년 3월, 그바그보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인 기욤 소로가 평화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4월, 소로를 총리로 하는 과도 정부가 출범했고, 7월에 내전은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그 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고 다시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4개월여만에 종식되었고 드로그바는 국민을 단합가기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60억을 기부해 종합병원을 짓는 등 조국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나이키의 아프리카 대륙 교육환경 개선 및 에이즈 치료를 위한 캠페인에도 동참했습니다.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 에 선정 되기도했던 디디에 드로그바.
일주일간의 휴전에 대해 드로그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트로피를 받았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다준 그 순간이 가장 영광스러운 트로피다."
사람들은 디디에 드로그바를 '검은 예수'라고 부릅니다.
오늘의 키워드
#감동 이야기 #디디에 드로그바 #드록바 #코트디부아르 #내전 #전쟁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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