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또 다른 부산 촬영지였던 한성주택(남일빌라)에서 곧 바로 이동한 곳은 범천동 호천마을. 드라마 속에서 꼴통 판타스틱4인 고동만, 최애라, 김주만, 백설희가 모여 술을 마시던 장소입니다. 극 중에서는 남일빌라 옥상이었지만 실제로는 두 장소가 분리된 촬영지였어요. 그래서 카카오맵이 알려주는대로 지게골역에서 버스를 두 번에 걸쳐 타고 이동, 아름빌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올라오는데 진짜 마을버스 운전 하..... 정말 부산의 버스들 운전 과격한 건 전국에서 어지간하면 안 꿀릴 것 같습니다. 동네 풍경이 정겹다 못해 약간 생소한 느낌도. 저 어렸을 때도 이 정도보단... 영화 세트장인 줄... 그래도 다 이 와중에 삶의 터전으로 많은 분들이 살아가고 계시겠죠?
카카오맵 확 까버릴라다 말았네요. 알려주는대로 좌회전을 해서 백일사 방향으로 가려고 했는데 정말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길이 없더라구요. 골목이 아니고 아예 멀쩡한 집이 있는데.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포기하고 저 밑까지 내려갔다가 돌아서 올라왔습니다. 더워 죽겠는데 카카오맵 진짜 콱 그냥...
그리고 또 하나. 카카오맵이 가장 추천하는 경로가 아름빌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려서 걷는 거였는데 진짜 힘들어 뒤질 뻔 했습니다. 날씨는 덥지 아까 한성주택(남일빌라) 오갈 때도 많이 걸었지 정말...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남일바 촬영지에서 평탄한 도로로 편하게 걸어가서(심지어는 올라올 때보다 길이도 짧고!) 버스를 탈 수 있던 곳이 있더군요. 남일바를 찾아오실 때는 '87번구종점정류장'을 목적지로 검색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훨~씬 편합니다. 더워 죽겠는데 카카오맵 진짜 콱 그냥...
남일바를 오면서 기존에 올려져 있던 포스팅들에서는 이 호천생활문화센터를 검색해서 오라고 하더군요. 도착하자마자 남일바고 뭐고 뭐 좀 마시자고 일단 카페로 후다닥... 호천생활문화센터 안에 카페 '끄티'가 있습니다. 와우, 근데 도착 시간이 오후 5시 50분이었는데 6시에 마감하신다네요. 정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저희가 너무 더워하니까 에어컨 앞에서 더위 좀 식히라며 살갑게 챙겨주신 사장님.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까 쌈 마이웨이 썰도 좀 풀어주시더군요. 한켠에 붙어있는 김지원 싸인도 있었고! 음료 가격은 저렴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상투과자랑 음료 하나씩 사서 숨을 좀 돌렸습니다. 여유있게 온다면 창가쪽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아 보였어요.
카페 영업시간도 끝났고, 남일바로 가볼까요? 보다시피 남일바 촬영지는 일반 가정집 옥상입니다. 아래집은 제가 갔던 날(종영날) 공사가 한창이었는데요. 남일빌라 촬영지(한성주택)와 마찬가지로 일부 관광객들 때문에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어 힘들어한다는 글도 봤습니다. 이날 남일바에서 만난 한 주민과 이야기를 나눠봤더니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썩 반기지 않는다고도 하구요. 그래서 남일바를 그대로 근처 다른 장소로 이전한다는 말이 있다고도 하더군요. 촬영을 위해 따로 제작된 세트가 아닌만큼 매너를 지켜야겠죠.
계단을 올라가 남일바 도착!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땐 대만 관광객도 있었어요. 한류의 힘이 새삼... 같은 장소 맞죠?ㅎㅎ
우왓, 남일바 네온사인! 전원을 연결하지 않아 불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드라마에서 본 남일바 네온사인 맞네요!
소주병과 콜라병으로 만든 트리도 한켠에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드라마 소품으로 사용됐던 각종 소품들.
앗, 이것들은 설희(송하윤 분)가 담근 매실 담금주!
꼴통 판타스틱4가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 많은 술병들. 심심해서 세어봤는데요. 소주 67병, 맥주 23병, 와인 5병, 양주 1병, 크루저 1병! 많이도 먹었구나 너네들... 아픈 청춘들이여...
자, 이게 뭔가 하면요. 제가 남일바를 방문한 날이 11일이었는데, 10일날 뉴스가 하나 떴습니다. '쌈, 마이웨이' 제작진 한명이 인스타그램에 "예의없이 우리세트 소품에 잔뜩 자기 이름 적어놓고 6월29일 방문한 요한민주 커플 찾습니다. 세트소품에 적힌 이름 지우느라 스탭들 고생중입니다. 앞으로 드라마 끝나면 오실 일들도 없겠지만, 여기와서 술드시고 담배피시고 낙서하신 많은 분들, 주민분들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앞으로는 오셔도 세트없으니 오지마세요"라고 글을 올린 것이었어요. 제작진이 올린 사진을 보니 남일바 네온사인에도 낙서를 해뒀었더군요. 다른 곳은 거의 지운 것 같은데 흔적이 남아있더군요. 제가 그 뉴스를 보고 얼마나 가슴 졸였던지... '쌈, 마이웨이' 종영을 맞아 부산 도착하자마자 남일빌라와 남일바를 방문하려고 계획했었는데 방문 바로 전날 이런 뉴스가 떴으니...ㅠㅠ 다행히 세트가 폐쇄되진 않았었지만... 정말 왜이렇게 예의가 없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뉴스의 영향인지 이날 남일바를 방문한 관광객들 모두 뭔가 행동이 조심스러웠어요.
남일바에서 내려다본 범천동 호천마을의 전경입니다. '쌈, 마이웨이' 촬영지 외에도 이중섭거리, 누나의길과 같은 명소가 있어요. 부산에는 이곳 호천마을을 비롯해 초량동 이바구길, 감천문화마을 등 달동네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지금은 이런 달동네들에 벽화를 그리고 꾸며 관광자원화를 시도했지만, 여기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서려있습니다. 그 역사의 시작은 조선 말기 개항 이후 대일 무역이 급성장하면서부터.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수많은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부산으로 몰려 들었는데, 주로 일본인들은 평지에, 조선인들은 고지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조선인들 중에서는 아무래도 일자리를 찾아 온 노동자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죠.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1965년까지 부산 인구를 40만 명 수준으로 맞추고 도시계획을 세웠는데, 해방 직후 28만이었던 부산 인구는 귀환 동포들이 자리를 잡으며 47만으로 순식간에 불어납니다. 게다가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으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렸죠. 결국 이들은 평지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나무판자, 함성, 깡통, 골판지 뭐 동원할 수 있는 재료는 모두 동원해 판자집을 늘려나갔습니다.
시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칫거리이긴 합니다. 1953년 부산역 앞 화재사건 당시 중구의 절반이 타버렸다고 하죠? 한번 불이 났다하면 판자촌 전체에 불이 번지기 일쑤였으니까요. 얼마나 불이 많이 났으면 '불산'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요. 결국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주택사업이 부산에서 시작되기에 이르렀죠. 재개발을 하기에도 무척이나 난해한 곳이 바로 이 부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술 마시는 거 아닙니다.. 굴러다니던 맥주병 하나 들고 폼만 잡아봤어요. 원래 이 남일바는 극중에서 밤의 모습만 나왔기 때문에 야경을 보려고 온 것이었어요. 오후 6시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해가 길더군요... 8시를 넘어서도 완전한 야경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 제 성격이면 그냥 떠났을텐데, 이번 여행은 여유있게 편하게 움직이기로 한터라 그냥 느긋하게 해가 떨어지는 걸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이곳 호천마을을 보면 호랑이와 관련된 벽화가 무척 많이 보입니다. 지역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요. 마을을 따라 흐르고 있는 내를 '범내'라고 부르는데, 옛날부터 이 냇가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옛날엔 이 위쪽 마을에 무덤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상여를 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오르곤 했다는데요. 술에 취한 아버지의 매를 피해 도망 나온 아이들이 무덤 옆에서 자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무덤 옆 자리는 밤에도 춥지 않았다는군요.
해가 뉘엿뉘엿 고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을 밝히기까지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해가 떨어지며 마을을 감싸는 모습도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동네 주민 한분이 관광객들에게 해주시는 이야기 하나를 함께 들었습니다. 남일바에서 보이는 산 정상이 바로 통일교의 성지라더군요. 통일교에서 '본성지'라고 부르는 부산 범내골 성지인데, 교주인 문선명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와서 통일교의 기초를 닦은 장소라고 하더군요. 그 외에도 눈물의 바위를 비롯해 범일전 기념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난세엔 백성을 현혹시키는 이들이 출몰하는 법이죠... 아, 통일교 분들에겐 쏴리염(애라 버전)입니다. 전 현재 개신교를 믿지 않긴 하지만 신천지와 통일교 등 이단·사이비는 아예 혐오를 하는 지라.
드디어 마을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얼른 켜져라 얼른 켜져라 노래를 불렀는데, 이제 정말 밤이 되었네요.
낮에는 잘 몰랐었는데, 왼쪽에 광안대교도 보입니다.
드라마에서 남일바가 나올 때마다 꼭 저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어요. 수많은 집들의 조명이 어두움 속에서 반짝이는 모습을요. 이렇게 '쌈, 마이웨이'가 종영하는 날 남일바를 직접 오게 되어서 무척 뿌듯합니다.
무려 2시반 반을 넘게 앉아 기다린 끝에 볼 수 있었던 호천마을의 야경이었습니다. 호텔로 돌아가 이날 방문했던 남일빌라와 남일바를 떠올리며 '쌈, 마이웨이' 마지막회를 봤죠. 걸어올라 가느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쌈, 마이웨이' 남일바 촬영지, 범천동 호천마을이었습니다!
이제 남일바로 이동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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